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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부] 감상기: 조훈현과 이창호, 참치아저씨가 나누는 반상 위의 인생 이야기

깊어가는 밤, 오랜만에 넷플릭스를 열었습니다.

시원한 맥주 한 캔과 곁에 앉은 아내, 그리고 미뤄두었던 영화 《승부》를 마주합니다.

조훈현과 이창호, 두 거장의 서사는 제게 단순한 바둑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지음(知音)과의 깊은 대화처럼 다가왔습니다.

영화 승부 포스터

바둑판 앞에 앉아 돌을 놓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5단의 실력을 쌓기까지,

흑백의 돌이 부딪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참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과묵하고 때로는 즐거웠던 그 취미는, 종종 일상의 우선순위를 뒤흔들 만큼 강렬했지요.

그래서 식당을 시작한 이후로는 그 소중한 친구와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바둑이란 마음의 여유가 깃들어야만 비로소 온전한 한 수를 둘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다시 가벼운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웃으며 돌을 놓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아무런 부담 없이 마주하여 서로의 안부를 묻듯 대국할 수 있는 그런 날을 말입니다.

이창호와 조훈현

영화 속 조훈현 명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둑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문장이 가슴에 깊게 내려앉았습니다.

상대가 앞에 마주 앉아 있지만, 정작 이겨내야 할 것은 내 안의 나이기 때문입니다.

조급함, 찰나의 자만, 그리고 문득 찾아오는 두려움.

그 감정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묵묵히 견뎌내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진정한 승부의 본질일 것입니다.

오른쪽이 실제 대국 장면이지요.

세상은 화려하게 피어난 꽃에 환호하지만,

꽃을 피우는 진짜 힘은 보이지 않는 뿌리에 있습니다.

그 뿌리를 단단하게 키우기 위해 들였던 고요한 시간과 정성들,

바둑도, 우리의 삶도 결국 그 보이지 않는 축적의 시간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법입니다.

왼쪽이 오랜 친구의 단점이랍니다.

바둑에는 돌의 효율을 따지는 '행마'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의미 없는 수를 버리고 효율적인 길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불필요한 욕심을 덜어내고,

하나하나의 돌이 서로를 살리는 유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둑을 대하는 정중한 자세이듯,

저는 가게를 운영하는 마음 또한 이와 닮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참치아저씨

골드참치의 식탁도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찾아주시는 손님 한 분 한 분은 결코 단순한 ‘하나의 자리’가 아닙니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분들이 모여 골드참치라는 하나의 커다란 풍경을 이루고,

그 풍경이 다시 손님들에게 따뜻한 가치와 위로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벽면의 기억의 벽

당장의 작은 이득에 눈이 멀지 않기를 매일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그것은 바둑에서 무리하게 이득을 챙기려는 ‘욕심수’와 같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유혹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전체의 형세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억지로 끌고 가기보다 중심을 잡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

그것이 바둑이 제게 가르쳐 준 삶의 운영법이자 식당의 철학입니다.

이렇게 많이 쌓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멀리 두었던 바둑이라는 오랜 친구가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한 판의 바둑 속에 인생의 굴곡과 제가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살아온 날들의 무수한 수가 쌓여 지금의 제가 되었듯이,

저는 오늘도 삶이라는 바둑판 위에서 조용히 다음 수를 고민합니다.

이기고 지는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다운 중심을 잃지 않는 단단한 한 수.

그것이 지금 제가 두고 싶은 가장 진실한 바둑입니다.

요리가 차암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골드참치는 그 한 수 한 수를 정성으로 둡니다.

식탁 위에 올리는 음식 하나, 건네는 서비스 하나에도

그저 혀끝의 맛을 넘어 마음의 온기가 남기를 바랍니다.

고객 한 분 한 분이 이곳에 오셨다가

귀한 돌처럼 놓이고 연결되어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는 곳.

그렇게 완성된 바둑판 같은 식탁 위에서 나누는 한 끼가,

여러분의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한 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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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12.31.(금) 오후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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