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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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정점에 닿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일품 요리

골드참치 참치 오마카세 코스 요리

허영만 화백의 서사시, <식객>을 곁에 두고 자주 펼쳐보곤 합니다.

전 권을 소장하며 몇 번이고 다시 읽는 이유는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 너머, 그 속에 담긴 사람 사는 냄새가 좋아서입니다. 음식은 그 자체로도 존재 가치가 충분하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가치는 전혀 다른 온도로 다가옵니다.

제게도 생애 가장 각별한 음식의 기억이 있습니다. 세상 그 어떤 성찬보다 달콤했던 기억, 바로 황도 통조림입니다. 그 노란 복숭아 조각들 사이에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어린 날의 철없던 부끄러움이 눅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나의 소년 시절, 그 시대의 농촌은 참으로 고단했습니다.

높은 이자의 빚을 내어 근근이 농사를 짓던 시절,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버텼을까 싶은 지독한 가난이 현실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너무나 버거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거친 표현들이 일상이 되곤 하던 시절이었지요.

중학교 시절, 부모님은 그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보고자 작은 마을 앞에 구멍가게를 하나 내셨습니다.

번듯한 상권이라기엔 민망한, 그저 백여 가구가 띄엄띄엄 모여 사는 외딴곳의 작은 쉼터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비포장도로 위로 한두 시간마다 지나가는 시내버스가 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면, 어머니는 정성스레 먼지털이로 과자 봉지와 음료수 병 위의 흙먼지를 털어내곤 하셨습니다. 그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의 가게 진열대 위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황도였습니다.

동생이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 처음 맛보았던 그 신비로운 달콤함은 제게 미식의 신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닿을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무짠지와 김치, 된장국이 식탁의 전부였고, 손님이 오면 설탕물을 대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단물이 빠진 껌을 벽에 붙여두었다가 이튿날 다시 씹을 만큼 귀한 것들이 많았던 때였기에, 황도는 제게 천상의 맛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황도가 바로 눈앞에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고생을 알기에 마음 한구석은 늘 안쓰러웠지만, 소년의 호기심과 욕망은 때로 죄책감보다 강렬했습니다. 부르튼 손에 군살이 박히도록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죄송한 마음을 품으면서도, 시선은 자꾸만 그 노란 통조림으로 향했습니다.

결국 저는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신 틈을 타 금기된 맛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농사일로 바빠 가게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셨던 상황은 어린 제게는 기회였습니다. 마치 벌에 쏘일 것을 알면서도 꿀을 탐하는 곰처럼, 저는 무모하게 그 달콤함을 탐닉했습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황홀한 꿀맛도 잠시, 남겨진 빈 깡통은 무거운 숙제가 되었습니다.

소년이 머리를 짜내어 선택한 은폐 장소는 지붕 위 슬레이트 물받이 아래였습니다. 그곳에 슬그머니 깡통을 밀어 넣으며 저만의 서툰 완전범죄를 매듭지었습니다.

긴 세월이 흘러 2년 전, 갑작스러운 맹장염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평소 병치레가 없던 제게 입원은 생경한 경험이었고, 저는 장난 섞인 협박으로 친구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친구들은 맹장염으로 병문안을 강요하는 사람은 너뿐일 거라며 핀잔을 주면서도 병실을 찾아주었지요.

그때 제가 친구들에게 신신당부하며 부탁한 음식이 바로 황도 통조림이었습니다.

쉰을 넘긴 나이가 되니, 잊고 지냈던 소중한 아날로그의 기억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삶에서 정말 가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선명해지는 기분입니다.

음식에 깃든 아스라한 감성과 교훈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운 나의 어머니.

훗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그게 무슨 희생이더냐.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그저 부모니까 당연히 되더라."

황도, 그 추억의 갈피에는 살고자 애쓰셨던 어머니의 애잔함이 서려 있습니다.

말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숭고함과, 그 깊이를 몰랐던 소년의 순수한 부끄러움이 함께 녹아 흐릅니다.

어머니 시를 읊다
어머니 시를 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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