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물 아껴 써라. 다 죄가 된다."
토방 끝에 앉아 볕을 쬐시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어린 시절, 우물가에서 거품 세수를 하던 제게 건네시던 투박하지만 정직한 훈계였습니다.
작두 펌프를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정성이 깃든 노동이었습니다.
행여 잊힐까 싶어 그 수고로운 과정을 잠시 기록해 봅니다.
먼저 땅을 깊게 파 내려가 물길이 비칠 때까지 기다립니다.
물길이 닿지 않으면 다시 메우고 다른 곳을 찾는 고된 작업을 반복해야 합니다.
운 좋게 물길을 만나면 자갈과 숯을 채워 정화의 층을 만들고, 파이프를 박아 펌프를 세워 올립니다.
수고롭게 길어 올린 물 한 바가지의 무게를 알기에 할머니께서는 그 귀함을 늘 강조하셨던 모양입니다.
"에이, 할머니 바보"라며 마당에 물을 뿌리던 철없던 아이는 어느덧 중년이 되었습니다.
세상천지에 흔한 게 물인 줄로만 알았던 어린 마음에는 할머니의 말씀이 그저 잔소리로만 들렸을 테지요.
콧물이 밴 소매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던 시골 소년의 순박했던 풍경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그 시절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슴에 손수건을 핀으로 고정하고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고학년이 되면 그 코 수건이 창피해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던 기억도 이제는 아스라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연아, 물 아껴 써라. 다 죄가 된다."
'죄'라는 단어 속에 담긴 할머니의 깊은 지혜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삶, 그것이 할머니가 일러주신 마음의 결이었습니다.
볕 아래 고요히 앉아 계시던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이미 커다란 하늘이 들어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 속에서 오랫동안 사시다 보니 마음마저 자연의 일부가 되셨던 게지요.
저는 그것을 '연하고 선한 마음'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하늘처럼 투명하고 깨끗해지는 그런 마음의 상태를 말입니다.
12월의 어느 날, 오랫동안 기다려온 투명한 하늘이 열렸습니다.
미세먼지 한 점 없는 파란 공간 위로 할머니의 당부가 겹쳐 흐르며 입가에 풍요로운 미소를 띄워줍니다.
롯데타워 전망대에서 인천 송도까지 보일 듯한 청명함이 실로 오랜만입니다.
오늘 하루는 할머니의 그 맑은 마음이 잠시나마 제게 머물러 있음을 느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