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오전의 빛이 낮게 깔리던 시간이었습니다.
먼 고향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다정한 안부 전화 한 통이 걸려왔지요.
어머니는 요즘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 가족의 일상을 훔쳐보는 재미에 푹 빠져 계신다며, 어린아이처럼 설렌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세찬 장맛비 속에서도 어디서 그 귀한 먹이를 구해왔는지, 억척스럽게 입을 벌리는 자식들을 살피는 그 지극한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 처마를 찾은 제비들은 참 운이 좋은 편입니다.
보통은 적당한 터를 잡고 흙과 풀을 엮어 집을 짓느라 온 힘을 다하기 마련인데, 어머니가 작년에 썼던 집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두신 덕분에 그 고된 수고를 덜었으니까요.
그 배려가 고마웠던 것인지, 보통 한 세대만 머물다 떠나는 다른 곳과 달리 우리 집 제비들은 두 세대의 새끼를 길러내곤 합니다.
가장 왕성하게 먹이를 물어 날라야 할 시기에 맞물려, 노모의 시선은 그 분주한 생명의 박동을 흥미롭게 쫓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사실 생명과 동거한다는 것은 때로 적지 않은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날리는 깃털과 먼지, 어느새 제비들의 뒷간이 되어버린 툇마루의 흔적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까지 신경 써야 하니, 위생을 생각하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지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처마 밑에 자리를 잡으려는 제비들을 내쫓으며 훼방을 놓기도 하지만, 결국 그 지극한 정성에 마음이 녹아 "이번 한 번만이다"라며 슬쩍 곁을 내어주곤 합니다.
어머니가 수년째 그 낡은 둥지를 허물지 않고 지켜오신 데에는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초여름마다 반복되는 번거로움에 이번만큼은 절대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겠다며 엄포를 놓으시던 어머니께, 제가 건넸던 한마디가 마음의 빗장을 열었던 것이지요.
그때 제가 드린 말씀은 이랬습니다.
'어머니, 기억나세요?
얼마 전에 다녀오신 베트남, 그 먼 곳에서부터 제비들이 날아오는 거래요.
우리가 말하는 강남이라는 곳이 사실은 저 먼 동남아시아의 따뜻한 나라들이거든요.
비행기를 타고 가도 그렇게 먼 길을, 그 작은 날개 하나에 의지해서 우리 집까지 찾아온 거예요.
오직 새끼를 낳고 키우겠다는 마음 하나로 그 고생을 하며 돌아온 손님들인데...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우리 어머니가 너그럽게 품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 먼 길을 돌아온 제비들에게 집이 없어지는 건 너무나 막막한 일일 테니까요.'
그해부터 어머니는 더 이상 제비집을 허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귀찮아하던 기색은 사라지고, 매번 찾아오는 그들을 진심으로 반기게 되셨지요.
"그 작은 날개를 저어 이 머나먼 곳까지, 우리 집이 뭐라고 잊지도 않고 찾아왔니."
"그래, 참 장하다."
"정말 고생 많았다, 귀한 손님아." 라며 말을 건네곤 하십니다.
장마가 시작된 서울의 공기는 무겁고 후덥지근하지만, 고향에는 시원한 빗줄기가 내린다고 합니다.
비 내리는 오늘도 그 작은 생명들은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쉼 없이 날갯짓을 하고 있겠지요.
노란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짹짹거리는 그 생동감을 마루에 앉아 지켜보고 계실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작은 미물이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키움과 자람의 현장이 마치 한 폭의 서정시처럼 다가옵니다.
오늘,
어머니가 전해주신 다정한 소식 덕분에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집니다.
생명을 귀히 여기는 그 마음을 닮아, 저 또한 오늘 하루를 정성껏 채워보려 합니다.
